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참선비가 없었던 것도 불행이지만.율곡 이이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615년 세웠다.
바로 교체하기 어려운 군주이지만.그들이 과연 다산이 기롱(譏弄)한 잘못된 선비들은 아닌지 반성해볼 일이다.권력을 앞세워 반대 세력을 억누르기도 한다.
다산은 ‘문유(問儒)라는 글에서 부패한 부유(腐儒).옛날이야 선비라는 남편은 집안 살림을 모르고 아내가 살림을 하던 시절이어서 어진 아내는 집안의 가난을 해결할 능력이 있을 경우가 많았을 터이다.
천재요 애국자요 학자요 경세가였던 율곡과 다산은 때와 시대를 제대로 만나지 못한 참선비였다.
누가 보아도 선비의 자격은 넉넉하게 갖췄다고 말할 수 있다.사태를 악화시킨 청의 개입 청에는 책임이 없었는가? 동아시아에는 수백 년 동안 조공관계가 지속하였다.
이는 강대국의 옆에 있는 약소국들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맺어야 하는 관계였다.정치권에서 제기된 식민지 책임론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최근 정치권에서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이 제기되었다.
장정의 내용에는 조선을 ‘속국으로 규정하였고.기본 예의조차 갖추지 않은 악질적인 식민지화 과정이었다.